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 《백남준의 보고서 1968-1979》 THE CONSULTANT: PAIK’S PAPERS 1968-1979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 《백남준의 보고서 1968-1979》 THE CONSULTANT: PAIK’S PAPERS 1968-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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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준의 뉴욕 활동 초기이자 혁명적 사회 전환기인 1960년대 후반 백남준이 작성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정책가 백남준을 조명하는 전시 ▶ 타문화에 대한 몰이해가 인종 차별과 전쟁의 원인이라고 보았던 백남준의 생각과 이를 타개하는 도구로서의 비디오 아트를 제안한 백남준의 보고서를 통해, 사회 문제 해결을 꿈꾸었던 예술가이자 미디어 컨설턴트 백남준을 만날 수 있는 전시 ▶ 오늘날 또 한번의 전쟁, 사회 양극화, 팬데믹, 기후위기 속에서 미디어 컨설턴트 백남준의 제안은 여전히 유효 ▶ 백남준의 글과 작품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전시 구성으로, 1994년 미국 순회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어린이 TV 로봇 <해커 뉴비>(1994), 13점 대형 연작 <나의 파우스트> 중 하나인 <나의 파우스트: 자서전>(1989-1991), 광복 50주년 광고 계기 롯데칠성 커미션 작품 <꽃가마와 모터사이클>(1995) 등 외부 작품 대여로, 각 소장처 내부 전시 외에 20여년 만에 백남준아트센터를 통해 처음 소개하는 주요 작품 전시 ▶ 2022년 구입 신소장품 <걸리버>(2001) 공개 ▶ 가수이자 작가 장기하가 백남준의 창작에 공감하며 전시해설 목소리 녹음으로 참여 |
Photo © Gianni Melotti
■ 전시개요
◦ 전 시 명 : 《백남준의 보고서 1968-1979》 THE CONSULTANT: PAIK’S PAPERS 1968-1979
◦ 전시기간 : 2022. 10. 13. ~ 2023. 3. 26.
◦ 전시장소 : 백남준아트센터 제1전시실
◦ 기 획 : 김윤서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사)
◦ 참여작가 : 백남준
◦ 주최주관 : 백남준아트센터, 경기문화재단
◦ 후 원 : 두나무, 한국메세나협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협 찬 : 롯데칠성, 노루페인트
◦ 작품대여 :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롯데칠성, 김희근
■ 전시 개막 연계 행사: 오프닝 파티 *무료입장, 사전 예약 불필요
◦제 목 : <글로벌 그루브 2022>
◦일 시 : 2022. 10. 13. 오후 4시-6시
◦장 소 : 백남준아트센터 뒷동산
◦아티스트 : DJ Klof(윤지영), DJ Soulscape(박민준) *비주얼: 박성수
◦내 용 : 백남준의 1973년작 <글로벌 그루브>에 사용된 백남준의 플레이리스트를 중심으로 각 디제이가 2022년 버전으로 새롭게 믹스한 플레이리스트를 선보임.
◦협력기획: 아트인큐베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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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Klof(윤지영) DJ 겸 전자음악 작곡가, 사운드 디자이너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뮤직테크놀러지-컴퓨터 작곡, 독일 프란츠 리스트 국립음대에서 전자음악 작곡, 바우하우스 국립대학교에서 미디어아트를 전공했다. 2009년부터 서울 언더그라운드 클럽을 시작으로 독일로 이주하여 베를린, 프랑크푸르트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날로그 모듈러 신스로 곡을 쓰고, 발매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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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Soulscape(박민준) DJ 소울스케이프는 힙합 DJ 겸 프로듀서이다. 1997년 데뷔하여 1998년 클럽 MP의 DJ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현재 대한민국 제1의 디제이로 자리잡았다. 이후 마스터플랜 소속으로 자신의 레이블 Strange Sweet Sounds 활동 및 수많은 믹스테입을 발표하였으며, 2005년부터는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는 것을 모토로 하는 유닛 360 Sounds를 이끌고 있다. |
■ 전시해설 (무료, 큐피커 앱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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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이자 작가로, 2008년에서 2018년까지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리더로 활동했다. 장기하와 얼굴들로 총 5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으며, 2018년 5집 《mono》를 마지막으로 밴드 해산 이후, 4년 만인 2022년에 솔로 앨범 《공중부양》을 발표했다.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출간해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장기하는 백남준의 창작에 공감하며, 백남준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전시 해설자로 나섰다. |
◦ 오디오가이드: 가수 장기하
■ 전시소개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관장 김성은)는 오는 10월 13일부터 2023년 3월 26일까지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 《백남준의 보고서 1968-1979》를 개최한다. 전시는 백남준이 작성한 보고서에서 포착한 작가의 구상을 바탕으로, 정책가 백남준을 조명한다.
백남준은 편지, 악보, 에세이, 기획안, 보고서 등 다양한 형식의 글을 여러 언어로 남겼다. 그 중 1974년 작성한 「후기 산업사회를 위한 미디어 계획: 21세기까지는 고작 26년 밖에 남지 않았다」라는 비장한 제목의 보고서는 아티스트의 것이라기 보다는 정책 연구서에 가까워 보인다. 보고서는 당찬 포부에 그치지 않고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낱낱이 담고 있다. 1930년대 미국이 고속도로 건설로 물자 이동과 경제 부흥을 이루었듯, 이제는 “전자초고속도로” 구축으로 아이디어를 실시간 전송해야 한다는 시급성을 강조하며 오늘날 실현된 인터넷의 비전을 제시한다. 또한, “정신 오염은 대기 오염만큼이나 심각하다”는 우려와 함께,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에 기술 전문가, 권력 복합체가 독점하지 못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경고한다.
백남준은 실제로 “컨설턴트”라는 직함을 가졌다. 그는 뉴욕 활동 시기에 미국 록펠러재단 “텔레비전/비디오/필름” 부문 지원금으로 작업을 진척시키는 한편, 공식/비공식 자문역으로서 1960년대 중반부터 약 20년에 걸쳐 비디오 아트에 대한 지원 당위성과 발전 방향성을 주도적으로 제안했다. 이 시기에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와 그 네트워크는 방송국 텔레비전 채널에서 송출되거나, 학술적으로 논의되고, 미술관에서 전시, 소장되며 확산되기에 이른다. 인류 문화역사의 기록과 보존을 위한 디지털 전환, 타문화에 대한 몰이해를 해결하고 배우는 도구로서의 비디오 교환, 세계를 연결하는 소통 체계로서의 전자초고속도로 구축, 다양성을 담보한 공영방송 콘텐츠의 지속 등, 백남준의 제안은 예술을 매개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대담한 포부이자, 매우 구체적인 당장의 실행 방안이었다.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 《백남준의 보고서 1968-1979》는 제목 그대로 백남준이 작성한 보고서에서 출발한다. 1968년에서 1979년 사이에 작성된 보고서 「종이 없는 사회를 위한 확장된 교육」(1968), 「후기 산업사회를 위한 미디어 계획」(1974), 「PBS 공영 방송이 실험 비디오를 지속하는 방법」(1979) 과 같은 글과 작품을 함께 보면서 백남준을 새롭게 ‘발견’하기를 권하는 한편, 정부의 제도적 지원은 물론, 민간 재단, 메세나 기금, 학교, 연구소, 미술관, 방송국의 지원과 협업이 그의 사회적 역할 실천에 도움이 되었음을 드러낸다.
주요 전시작으로는 통신매체의 변화사를 함축한 백남준아트센터 소장품 <코끼리 수레>(2001)를 비롯하여,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롯데칠성, 그리고 개인소장가로부터 대여한 작품을 선보인다.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전시 이후 1994년부터 시작된 백남준의 미국 순회전 《전자초고속도로》(1994)에 포함된 TV 로봇 <해커 뉴비>(1994), 교육, 통신, 환경, 건강 등 사회 변화의 주요 키워드로 구성한 <나의 파우스트> 13점 연작 중 하나인 <나의 파우스트: 자서전>(1989-1991), 백남준이 상업광고의 형식을 빌어 그의 비디오 아트를 모든 가정의 텔레비전으로 송출한 광복 50주년 기념 롯데칠성 커미션작 <꽃가마와 모터사이클>(1995)이 각 소장처 내부 전시 외에 20여 년 만에 백남준아트센터를 통해 처음 공개된다.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라는 익숙한 길에서 돌아나와 또 다른 백남준을 맞닥뜨리는 것, 정책가 백남준의 구상과 실현을 가능하게 했던 예술 생태계와 제도적 기반을 살피는 것이 이 전시의 목적이다. 1960년대 사회 전환기, 변화의 흐름에 주목한 미디어 컨설턴트 백남준을 들여다보는 일은 지금까지 백남준 연구에서 주목하지 못한 일련의 과제를 드러내는 동시에 그의 전자예술 작업과 새로운 접점을 마련한다. 백남준의 보고서는 오늘날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이 나아가야 할 길에 지침이 되어줄 것이다. 지금, 또 한 번의 디지털 전환과 사회 변화의 한 가운데서 백남준의 미디어 컨설팅은 현재진행형이다.
■ 주요 작품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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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인스턴트 글로벌 대학 백남준은 1968년 「종이 없는 사회를 위한 확장된 교육」 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인스턴트 글로벌 대학”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비디오를 제작해서 우편으로 주고 받는 것으로, 이 가상의 대학에서 비디오는 다름에 대한 몰이해를 해결하고 타문화를 배우는 도구로 기능한다. 이 보고서를 작성할 무렵, 백남준은 전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과학 조직 중 하나였다고 평가받는 벨 전화연구소에서 초청 아티스트로서 컴퓨터 실험을 진행했고, 스토니브룩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리서치 컨설턴트로 일했다. 대학과 연구소를 오가며 학생과 엔지니어를 만났고, 아직 일반에 보급되지 않은 컴퓨터와 선구적인 기술 장비를 사용할 수 있었다. 학교와 연구소의 물적/지적 자원을 함께 사용하고,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접촉하며 배운 경험은 추후 그의 보고서에 구체적인 제안으로 반영된다. 학교, 도서관, 연구소 등 사회기반시설은 물론 예술도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시각의 근간이 된다. |
해커 뉴비, 1994
김희근 소장
백남준은 인터넷 상용화 이전, 1974년에 보고서 「후기 산업사회를 위한 미디어 계획」에서 인터넷을 예견하는 ‘전자초고속도로’ 개념을 처음 주창하고, 이를 동명의 대규모 미국 순회전 《전자초고속도로》(1994–1997)를 통해 전시로 구현했다. <해커 뉴비>는 해당 전시에 포함된 주요 출품작으로, 전자초고속도로를 여행하는 다음 세대의 표상이다. ‘뉴비’는 인터넷에서 파생된 조어로, 인터넷을 처음 사용하는 신규 사용자 또는 새로 온 사람을 칭한다. ‘해킹’은 기존의 프로그램 소스를 변경해서 제작자의 의도와 다르게 바꾸는 모든 행위를 포함하므로, ‘해커’는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사람을 의미한다. 한 손에 이미 게임기를 들고 있는 어린이 로봇 조각은 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자초고속도로에서 삶의 여정을 시작할 미래 세대에 대한 백남준의 바람을 담고 있다.
하이웨이 해커, 1994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하이웨이 해커>는 노란색 신호등 오브제와 거꾸로 부착한 앤틱 라디오 케이스가 각각 눈과 입을 구성하고, 그 속에 텔레비전 모니터를 삽입한 얼굴 형상의 TV 로봇이다. 해커의 주요 도구인 컴퓨터, 회로 보드를 정수리에 달아 그 정체성을 부여하고, 입 주위에 달린 나팔은 고속도로의 경적 소리를 시각화한다. 눈과 입에서 재생되는 영상은 도로, 선박, 차량 등 교통수단과 컴퓨터로 만들어진 가상 고속도로 이미지의 중첩으로, 백남준이 1970년대에 주목했던 사회 전환기의 모습, 즉 하드웨어 중심의 산업사회에서 소프트웨어 기반 정보사회로의 이행을 은유한다. <하이웨이 해커>는 미래 사회의 인간상을 담아낸 TV 조각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어쩌면 백남준의 자소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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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전자초고속도로 백남준이 1974년에 작성한 보고서 「후기산업사회를 위한 미디어 계획」에서 주창한 “전자초고속도로” 개념은 실제 고속도로에서부터 출발한다. 1930년대 미국이 고속도로 건설로 경제 부흥을 이루었듯, 전자초고속도로 구축으로 아이디어를 실시간 전송하고 공유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백남준의 주장은 도로교통과 전기통신을 중첩한 그의 사유를 드러낸다. 백남준은 인류학자, 사회학자, 경제학자, 미래학자의 저서와 정책보고서, 기사 등 사회 전환기의 최신 연구를 전분야에 걸쳐 탐독했는데, 광역통신망 혁명을 주축으로 한 백남준의 비전은 등가 교환이나 값을 반드시 치러야 하는 시장경제 논리의 지배를 받지 않는 비디오 공동시장을 설계했다는 점에서 당시 여느 연구자들의 구상과는 다른 길을 향한다. 백남준은 지역, 인종, 성별, 세대를 초월해 다양한 주체가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지구촌을 구상하며, 기술 전문가와 “의심쩍은 권력 복합체”가 미디어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경고한다. |
꽃가마와 모터사이클, 1995
롯데칠성 소장
백남준의 작품에는 수레, 가마, 자전거, 모터싸이클, 자동차 등 탈 것이 종종 등장한다. 이는 백남준이 “혁명”이라 칭했던 도로교통의 발전사와 새로운 운송 수단인 텔레커뮤니케이션, 즉 “전자초고속도로” 구상에 천착한 그의 연구 주제를 반영한다. <꽃가마와 모터사이클>은 제목과 작품의 형상 그대로, 각각 과거와 현대를 직접적으로 지시하며 두 개체가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모터사이클을 탄 로봇을 구성하는 재료 중 하나인 네온은 오늘날 전자초고속도로를 달리는 속도감과 기쁨을 극대화한다. 꽃가마를 탄 로봇과 모터사이클을 탄 로봇을 쌍으로 놓은 구성은 오래된 미디어를 함께 사유하면서 미래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백남준의 의도를 간결하게 보여준다. 1995년 광복 50주년에 롯데칠성의 의뢰를 받아 제작된 <꽃가마와 모터사이클>은 당시 칠성사이다 광고에 등장했다. 광고는 파격적으로 32초 동안 백남준의 작업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백남준은 상업광고의 형식을 빌어 비디오 아트를 모든 가정의 텔레비전으로 송출하는 데 성공했다.
코끼리 수레, 2001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코끼리 수레>는 제목 그대로 코끼리가 수레를 끌고가는 형상의 대형 조각이다. 코끼리의 네 발은 바퀴 달린 카트 위에 올라섰고, 그 위로 아디다스 우산을 쓴 불상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다. 수레에는 백남준이 즐겨 사용한 텔레비전, 라디오, 축음기가 가득 쌓여있다. 코끼리와 수레는 분리된 듯 여러 개의 전선으로 서로 이어졌는데, 수레에 실린 텔레비전에서는 태국 수린의 코끼리 축제 영상이 재생된다. 전체 가로 6.3미터, 높이 3미터에 이르는 <코끼리 수레>는 긴 길이 만큼이나 이동 방향을 따라 비디오, 시청각 정보가 확산되는 것처럼 보인다. <코끼리 수레>는 작품을 구성하는 신구 매체의 혼합과 대비가 뚜렷한 조각으로, 상반되는 두 개념을 함께 사용해 주장을 극대화하는 방식은 백남준의 글에도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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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연구소, 방송국, 미술관 미국에서는 1964년 문화예술진흥법에 이어 1967년 공영방송법이 제정되면서 텔레비전이 대중에게 예술을 전파하기 위한 도구로 규정되었고 이와 연계한 지원이 크게 증가했다. 교육과 문화적 목적으로 텔레비전을 활용하고, 지역사회와 연계한 자원 제공을 공영방송의 역할로 법제화하는 제도와 더불어 록펠러재단, 포드재단과 같은 사립 재단의 지원금이 공영방송국에 투입되었다. 이 시기에 백남준의 비디오는 방송국 텔레비전 채널에서 송출되거나 학술적으로 논의되고, 이를 바탕으로 미술관에서 전시, 소장되며 확산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백남준은 미술관과 대학, 연구소와 방송국을 오가며 개인이 구비하기 어려운 컴퓨터와 방송 장비를 사용하고 실험적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제작해 송출할 수 있었는데, 1980년대에는 국가가 주도하는 하이테크놀로지의 결정체인 위성 방송 시스템을 이용하여 대륙 간, 서로 다른 문화 간의 소통을 만들고자 하는 자신의 비전을 실현했다. 그 바탕에는 제도적 맥락과 지원금, 예술가 네트워크와의 협업, 열린 사회기반시설과 배움이 있었다. 열린 공유재를 통한 배움과 실현의 경험은 결국 자신의 이름을 딴 공공 미술관 설립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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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연구소에서의 디지털 실험, 1966-67
Courtesy of Electronic Arts Intermix (EAI), New York
전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연구 조직 중 하나였다고 평가받는 벨 전화 연구소는 1960년대에 아티스트들을 초청해 연구소의 컴퓨터 시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연구소의 물적 자원뿐 아니라 인적, 지적 자원을 포함하였는데, 아티스트들이 기술을 이해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작업 궤적에 접목할 수 있었음은 물론, 연구소의 엔지니어와 아티스트가 접촉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상호작용을 낳았다. <벨 연구소에서의 디지털 실험>은 백남준이 1966년부터 1968년까지 벨 연구소를 드나들며 진행한 컴퓨터 실험 중 하나이다. 이 비디오는 컴퓨터 화면을 녹화한 것으로 백남준이 아날로그 컴퓨터 GE–600을 사용해 만든 실험을 보여준다. 무의미해보이는 숫자와 점으로 구성된 영상은 시각적 유희와 더불어, 백남준이 컴퓨터에 접근하는 방식을 함축한다. 백남준은 벨 연구소에서 컴퓨터 언어를 배우고 사용하면서, 그가 주목했던 컴퓨터의 ‘임의성’은 알고리즘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글로벌 그루브, 1973
백남준아트센터 비디오 아카이브
<글로벌 그루브>는 보스턴 방송국 WGBH와 뉴욕 WNET과의 협업으로 제작한 영상으로, 1974년 1월 30일 WNET에서 방송되었다. 백남준은 텔레비전 방송국과의 협업에서 텔레비전 네트워크를 자신의 비디오 작품들을 배포하는 채널로 활용하였다. 텔레비전 방송국 입장에서 비디오 작가와의 협업은 창조적인 매체로서 뉴미디어의 잠재성을 선점할 기회가 되었고, 예술가 입장에서는 작업과 전시를 위한 대안적인 공간을 모색할 기회가 되었다. <글로벌 그루브>는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를 이용해 영상의 형태와 색을 변조하고, 다양한 자료의 총합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전자 콜라주로, 세계 각지의 춤과 음악을 다양하게 편집하여 보여준다. 영상은 일관된 서사 없이도 우리가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어 ‘그루브’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백남준은 이 비디오를 통해 우리가 어떤 세계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알려준다. 그것은 서로 다름을 존중하며 자유롭게 소통하는 즐거운 세계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4
백남준아트센터 비디오 아카이브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빅브라더가 텔레비전을 통해 지식과 권력을 집중화시키는 전체주의 사회가 올 것으로 예언한 데에 반하여, 백남준은 뉴욕과 파리를 실시간으로 연결시키는 인공위성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전세계에 생중계하여 상호소통의 예술매체로서 텔레비전이 지닌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 작품은 뉴욕의 WNET 텔레비전 스튜디오에서 열렸던 존 케이지, 머스 커닝햄, 샬럿 무어먼 같은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공연과 파리의 퐁피두 센터에서 진행되었던 요셉 보이스와 어반 삭스 등의 공연이 교차되거나 한 화면 안에 공존하는 방식으로 편집되었다. 1980년대 위성은 냉전의 산물이자, 엄청난 국가적 자본을 투입한 하이테크놀로지의 결정체였다. 이러한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몇몇 방송국과 나사(NASA) 정도였다. 그러나 백남준은 이러한 위성 방송 시스템을 대륙 간, 서로 다른 문화를 연결할 수 있는 계기로 생각했고, 여러 협업자들과 함께 이를 실현했다.
나의 파우스트–자서전, 1989-1991
리움미술관 소장
<나의 파우스트>는 총 13점을 이루는 대규모 연작으로, 사회 변화의 주요 요소와 아티스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백남준의 관점이 잘 드러난다. “예술,” “교육,” “농업,” “건강,” “교통,” “통신” 등 개별 작품에 부여된 13개의 주제어는 1974년에 백남준이 보고서에서 언급했던 다니엘 벨의 사회전환기 주요 요소에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특히 <나의 파우스트–
자서전>은 위에 열거된 주제의 집약으로, 백남준이 주목했던 모든 개념을 망라한 대작이다. 서양 고딕 교회 또는 제단의 형태를 차용한 구조물 안에 텔레비전 25대가 설치되어 있고, 최상단에는 또 하나의 모니터와 안테나가 하늘을 향해 솟구친다. 구조물의 표면에는 레이저디스크, 신문 기사, 편지, 악보 등이 콜라주되었다. 작품 한 쪽에 무심히 걸려있는 백남준의 외투 주머니에는 그가 늘 손에서 놓지 않던 신문이 꽂혀있다. “파우스트”는 괴테가 60여 년에 걸쳐 집필한 희곡으로 전 생애를 통해 성찰되고 완성된 대작이다. 이에 백남준은 <나의 파우스트>라는 제목을 붙여 그가 예술가로서 달성하고자 했던 평생의 과업을 전한다.
■ 백남준아트센터 신소장품 2022
걸리버, 2001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걸리버>는 백남준이 2001년에 제작한 3채널 비디오 설치 작업이다. 이 작품은 조나단 스위프트가 1726년에 쓴 『걸리버 여행기』에서 그 모티브를 따왔다. 『걸리버 여행기』는 주인공 걸리버가 릴리풋이라는 소인국과 대인국, 날아다니는 섬 라퓨타 등을 여행하는 에피소드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은 인간사회를 비판하는 날카로운 풍자가 돋보이는 소설이다.
바닥에 누워있는 거인 걸리버는 총 길이가 4미터가 넘는 거대한 로봇이다. 오래된 텔레비전 케이스와 라디오 케이스 등이 걸리버의 몸을 이루고 있고, 모두 11개의 CRT 텔레비전에서 두 종류의 비디오를 보여준다. 하나는 사이보그가 첨단 미디어 환경위로 성큼 걸어가고 있는 장면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한 자율주행이나 전자 도로를 질주하는 비디오이며, 또 하나의 비디오는 백남준이 제작한 <로봇 K–456>과 전 세계 곳곳의 풍경과 컴퓨터 그래픽을 번갈아 보여준다. 현재와 미래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통해 백남준의 <걸리버> 역시 다양한 사회의 이야기와 상상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총 18대의 소인국 로봇이다. 이 작은 로봇들은 1930년에 일본에서 제작되어 최초로 대량 생산된 로봇으로 여겨지는 장난감 “릴리풋”을 연상시킨다. 백남준이 걸리버와 함께 제작한 소인국 로봇들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각종 기계 부품, 나사, 전선, 파이프 등이 릴리푸티언의 몸체를 다채롭게 구성하고 있으며 머리는 5인치 LCD 텔레비전으로 만들어졌다. 로봇 머리에서 보여주는 비디오는 <로봇 K–456>이 뉴욕의 거리를 걸으며 펼치는 퍼포먼스, 장난감 로봇의 작동 모습, 비디오 신디사이저로 조작한 샬롯 무어먼의 퍼포먼스와 다채롭고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통해 백남준은 생기발랄한 소인국 로봇과 상대적으로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거대한 걸리버의 대비를 연출할 뿐 아니라, 로봇들이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며 걸리버의 온몸을 전선으로 포박하고 있는 연극적 상황을 보여준다.
■ 전시 관람안내
◦ 관람요금: 무료
◦ 관람시간: 오전 10시 ~ 오후 6시 ※ 입장은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입니다.
◦ 휴 관 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당일.
